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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수리취골 성지순례 후기|한국 최초 성모성심회가 탄생한 깊은 산골 성지

by 미카엘라 성지여행 2026. 5. 16.

한국 천주교 최초의 성모 신심 단체인 성모성심회(聖母聖心會)가 탄생한 곳이 충남 공주 깊은 산골짜기라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저는 제작년에 예비신자 성지순례로 처음 이곳을 다녀왔고, 작년에는 세례를 앞둔 신랑과 또 한 번 방문하였습니다.  같은 장소를 두 번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 우연이 참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수리취골 성모상과 외관
수리취골 성모상과 외관

이런 곳에 사람이 살았을까, 박해 속 신앙의 역사

수리취골이라는 지명은 이 골짜기에 자생하는 산나물 '수리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름은 소박하지만, 그 뒤에 담긴 역사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1846년을 전후한 시기, 신유박해(辛酉迫害)와 기해박해(己亥迫害)를 피해 천주교인들이 이 깊은 산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신유박해란 1801년 순조 즉위 직후 천주교를 탄압한 사건이고, 기해박해란 1839년 헌종 때 대규모 순교자가 발생한 박해를 말합니다. 두 박해 모두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직접 가보니, "이런 곳에 정말 사람이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나왔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고, 골짜기가 얼마나 깊은지 하늘이 좁아 보일 정도였습니다. 단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정든 고향을 등지고 이 험한 산중에서 화전(火田)을 일구며 살아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단순한 역사 정보로 머물지 않고 가슴으로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이곳은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 신부와 고페르 신부가 교우들과 함께 한국 최초의 성모성심회를 결성한 사적지로 공식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블뤼 신부는 이후 제5대 조선교구장을 지내다 병인박해(丙寅迫害, 1866년 흥선대원군 시기 대규모 천주교 탄압 사건) 때 순교한 인물입니다. 이렇게 가파르고 외진 곳에서 한국 가톨릭 역사의 중요한 발자국이 찍혔다는 사실이, 대단하기도 하고 솔직히 조금 짠하기도 했습니다. 공신력 있는 자료로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공개한 성지 정보를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체조배실부터 성모당까지, 순례의 시작

성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성체조배실(聖體朝拜室)로 향하게 됩니다. 성체조배실이란 성체, 즉 천주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기는 축성된 빵이 모셔진 곳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묵상하는 공간을 말합니다. 순례단 모두 함께 들어가 첫 인사를 드렸는데, 이 성체조배실 축복식 미사를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님이 집전하셨다는 이야기를 현장에서 들었습니다. 자주 뉴스에서 보던 분이 이 공간을 축복했다고 생각하니 왠지 친근하고 묘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성체조배실을 나와 성모당(聖母堂)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수리취골의 성모상은 제가 봤던 성지 성모상 중에서 유독 표정이 따뜻했습니다. '왔니?' 하고 맞아주는 것 같은 환한 미소라고 해야 할까요. 성지 순례 중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그 앞에서 실제로 마음이 한결 풀렸습니다.성지 방문이 처음이신 분들, 혹은 종교는 없지만 역사 유적으로 방문하려는 분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도 성체조배실과 성모당만큼은 천천히 들여다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조용하고 숙연한 공간 자체가 주는 힘이 분명히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손으로 빚은 조형물과 묵상

수리취골 성지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십자가의 길(Via Crucis)입니다. 십자가의 길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 선고를 받은 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의 14가지 수난 장면을 순서대로 묵상하며 걷는 신심 행위를 말합니다. 가톨릭 성지순례에서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전례 형식입니다.

 

제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수리취골의 십자가의 길 조형물은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손의 형태로만 각 장면을 표현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왜 손이지?' 싶었는데, 걷다 보니 그 단순함이 오히려 더 강하게 마음에 박혔습니다. 어쩌면 그게 의도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낮은 오르막길을 따라 순례단 다 같이 14처를 걸었는데, 각 처마다 잠시 멈춰 글귀를 읽으며 묵상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머릿속이 비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분들 중에는 십자가의 길을 단순한 종교 행사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인생의 무게를 지고 가는 한 사람으로서 사색하며 걷는 코스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박해의 공포 속에서도 이 골짜기에서 신앙을 지켜낸 선조들을 생각하면, 지금 제가 걱정하는 일들이 참 작아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수리취골 방문 시 유의할 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경사진 흙길과 오르막 구간이 있으므로 반드시 운동화를 신어야 합니다. 구두나 샌들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2. 이곳은 수도자들이 실제로 생활하는 수행 공간이므로 큰 소리로 대화하거나 뛰어다니는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3. 노출이 심한 복장은 피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방문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4. 방문 전 미사 시간이나 순례 일정을 성지 측에 미리 확인하면 더 알차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국내 천주교 성지순례 관련 공식 안내는 한국 천주교 성지 통합 포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천주교성지순례).

수녀님들의 미사 성가와 피정의 집, 그리고 빵 한 조각

순례의 끝자락에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이곳에는 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彌里內聖母聖心修女會)의 총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란 이 지역 미리내 성지에 뿌리를 둔 국내 수녀회로, 수리취골과 깊이 연결된 공동체입니다. 성당 안에 수녀님들이 정말 많이 계셨고, 동남아 출신으로 보이는 외국인 수녀님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습니다. 가톨릭이 국경 없는 공동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미사 성가(聖歌)를 수녀님들이 직접 부르셨는데, 그 아름다운 목소리가 성당 안에 울려 퍼지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라이브로 이런 성가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건 직접 가보지 않으면 절대 모릅니다.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수녀님들이 직접 만드신 빵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었습니다. 시중에서 파는 빵처럼 달거나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고 소박한 맛이었습니다. 저는 빵에 크게 욕심이 없는 편인데도 두개를 다 먹었습니다.

 

그리고 성지 안에 피정의 집(避靜의 집)이 있다는 안내판도 봤습니다. 피정의 집이란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하게 기도하고 휴식하는 피정(避靜, 세상의 소음을 피해 내면에 집중하는 수련)을 위한 숙박 시설을 말합니다. 공기도 맑고 산속이라 소음이 전혀 없으니, 번아웃이 왔을 때 며칠 머물다 오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랑이랑 같은 장소를 두 번 순례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제작년에 혼자였던 길을 작년에는 신랑 옆에서 걸으면서, 하느님의 뜻이 이런 방식으로도 나타나는구나 싶었습니다. 종교가 없으신 분들도 수리취골은 한번 가볼 만한 곳입니다. 박해의 역사, 손으로 빚은 십자가의 길, 수녀님들의 성가, 담백한 빵 한 조각까지. 화려한 관광지에서는 얻을 수 없는 종류의 조용한 충만함이 있습니다. 봄이나 가을, 햇살 좋은 오전에 편한 운동화 신고 가시는것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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