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뫼성지 방문기: 김대건 신부님의 발자취와 푸른 소나무 숲의 위로
공세리 성당을 둘러보고 오후에 솔뫼성지로 향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야외 뮤지컬이 한창이었고, 저는 얼떨결에 관람객이 되어 한 시간 넘게 자리를 지켰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일대기를 담은 공연이었는데,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오는 야외에서 보니 그 울림이 예상보다 훨씬 컸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 나서야 실감한 사실이 있는데, 김대건 신부님은 25세라는 나이에 처형되셨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司祭), 즉 가톨릭 교회에서 성사를 집전할 수 있는 성직자로 서품 된 첫 번째 조선인이 채 2년도 사목 활동을 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뮤지컬 처형 장면에서 더욱 가슴 깊이 박혀 들었습니다.
사목 활동(司牧活動)이란 신부가 신자들을 영적으로 돌보고 이끄는 모든 활동을 말합니다. 신부님이 조금 더 오래 살아 계셨다면 초기 한국 천주교의 교세 확장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셨을지, 뮤지컬을 보며 내내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뮤지컬이 끝난 뒤 신자분들이 의자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시선을 빼앗긴 것은 등이 굽은 할머니 한 분이었습니다. 아흔 가까이 되어 보이는 연세에도 묵묵히 자기 의자를 들고 제자리로 옮기시는 모습이 뭔가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 솔뫼에서 태어나 증조할아버지, 작은 할아버지, 아버지까지 4대에 걸친 순교자 가문 출신입니다. 이처럼 순교(殉敎), 즉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이 한 집안에서 4대에 걸쳐 이어졌다는 사실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서, 그 신념의 무게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말해줍니다. 병인박해(1866년)를 포함한 조선 시대 천주교 박해 과정에서 사망한 순교자 수는 약 8천~1만 명으로 추산됩니다(출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라파엘 호를 닮은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압도감
뮤지컬을 마치고 대성당으로 이동했습니다. 건물 외관이 독특해서 왜 이런 형태인지 바로 찾아봤는데, 1845년 김대건 신부님이 조선에서 중국 상하이로 건너갈 때 이용한 선박인 라파엘 호(號)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배의 선체(船體)를 본뜬 건축 구조란 설명을 읽고 다시 외관을 바라보니, 그 설계 의도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습니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붉은빛이 주조를 이루는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에서 쏟아지는 빛이 성당 전체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란 색유리를 이어 붙여 만든 창문 예술로, 채광과 함께 종교적 서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본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중에서 손꼽을 정도로 인상적이었고, 이 작품은 충남 강경 황산포의 해도(海圖)를 모티프로 김성원 작가가 2010년에 제작한 것입니다.
그 빛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으로 이끌려 온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사였습니다.
성당 구조 요약
- 건물 외형: 라파엘 호 선박을 형상화한 배 모양 설계
- 스테인드글라스: 황산포 해도 모티프, 김성원 작가, 2010년 제작
- 건립 배경: 김대건 신부님의 중국 항해를 기념하는 상징적 공간
솔뫼 소나무 숲과 12사도 조각상이 있는 생가 구역
대성당 맞은편 생가 쪽 입구로 넘어가자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유럽 광장을 연상시키는 아레나 형태의 공간이 펼쳐지고, 12 사도(十二使徒)의 조각상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12 사도란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선택한 열두 명의 제자로, 초대 교회 설립의 핵심 인물들을 가리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성지 한쪽에 이토록 웅장한 조각 군(群)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조각상들을 하나씩 둘러봤는데, 제가 이름을 알아본 분은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열 분은 얼굴을 보고도 누구인지 전혀 몰라서 민망한 마음이 들었고, 집에 돌아가서 12사도의 행적을 찾아봐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생겼습니다.
생가 구역으로 들어가는 길은 소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터널 같았습니다. 솔뫼(솔뫼)라는 지명 자체가 소나무가 많은 산을 뜻하는 순우리말인데, 이름 그대로였습니다.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phytoncide) 향이 공기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피톤치드란 식물이 세균이나 해충을 막기 위해 분비하는 천연 항균 물질로, 사람에게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고 면역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늘 사이로 걷는 것만으로도 기를 받는 느낌이 들었고, 실제로 산림욕 효과를 톡톡히 누렸습니다.
복원된 생가는 흙벽과 짚지붕으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고, 마당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동상이 생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작은 초가집 앞에 섰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지, 제가 직접 서보니 그 궁금증이 더 커졌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방한 당시 윤지충 바오로 등 복자(福者) 124위를 시복(諡福)하며 한국 순교 역사에 깊은 경의를 표했습니다(출처: 바티칸 뉴스).
생가 뒤로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도 걷고 싶었지만, 같이 온 가족들이 있어 다음 방문으로 미뤄두었습니다. 다음에는 혼자 와서 열네 처소(處所)를 차분히 걸으며 사색할 시간을 가져봐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공세리 성당에서 시작해 솔뫼성지로 마무리된 하루였는데, 성지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고 로컬푸드 행복장터에서 오미자 한 병을 사 들고 나오는 길이 유난히 가벼웠습니다. 뮤지컬, 스테인드글라스, 소나무 숲, 생가까지 한 공간 안에 이렇게 볼곳이 많은 곳은 한 번 방문으로는 다 소화하기 어렵습니다. 이른 오전이나 해 질 무렵에 방문하면 관람객이 적어 더 조용하게 즐길 수 있고, 공세리 성당과 묶으면 충남 천주교 순례길의 알찬 하루 코스가 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이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솔직히 위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