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세리 성당은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았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아름다운 성당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기 전에 자료를 찾아보니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73년 병인박해에 이르는 기간 동안 순교하신 32분의 유해를 모신 순교성지(殉敎聖地)입니다. 붉은 벽돌과 푸른 하늘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 뒤에 이토록 무거운 역사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공세리 성당 팽나무와 보호수
공세리 성당은 아름다운 관광지로 알려져 있지만, 막상 발을 디뎌보면 그 분위기가 생각보다 훨씬 묵직합니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초입부터 보호수(保護樹)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보호수란 수령이나 희귀성 면에서 특별히 보전 가치가 있다고 지정된 나무를 뜻합니다. 그중에서도 저의 발걸음을 완전히 멈추게 만든 것은 '공세리 성당 문지기 나무'로 불리는 팽나무였습니다.
수령이 300년을 훌쩍 넘는 이 나무 앞에 서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길어야 백 년을 사는 동안, 이 나무는 박해의 시절도, 일제강점기도, 전쟁도 다 목격했을 텐데 과연 어떤 생각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오래된 나무는 관광 포인트 중 하나 정도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팽나무 앞에서는 그런 가벼운 시선이 사라졌습니다.
공세리(貢稅里)라는 지명 자체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공세리란 조선시대에 충청도 일대의 조세를 모아두던 공세창(貢稅倉)이 있던 자리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쉽게 말해 나라의 세금 창고가 있던 경제적 요지였다는 뜻인데, 이런 곳이 훗날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점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공세리 성당은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장소입니다.
야외 고해소와 미사
이번 방문에서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고해소(告解所)의 위치였습니다. 대부분의 성당에서는 건물 내부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데, 공세리 성당의 고해소는 건물 밖 야외에 간이 형태로 세워져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창고인가 싶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야외 고해소에서 고해성사를 드리고 나오니 오히려 특별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개방된 공기 속에서 드리는 고해가 더 솔직해지는 기분이랄까요.
이후 성당 안에서 드린 미사는 일반 성당에서의 미사와 또 다른 무게감이 있었습니다. 32분의 순교자분들이 바로 이 땅에 모셔져 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있으니, 성체성사(聖體聖事) 하나하나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박해 시대의 순교자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를 기록한 성지박물관도 꼭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1,5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 있고 월요일은 휴관합니다. 공세리 성당의 순교 역사와 관련한 자료는 가톨릭평화방송에서도 일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방문 전 알고 가면 박물관 관람이 훨씬 풍부해집니다.
공세리 성당을 제대로 방문하기 위한 순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주차장에서 언덕을 올라 팽나무 등 보호수를 먼저 만납니다.
- 본당 건물 외관을 천천히 한 바퀴 돌며 고딕 양식 건축의 세부를 눈에 담습니다.
- 성지박물관에서 순교 역사와 유물을 확인합니다 (월요일 휴관).
- 야외 성체조배실을 놓치지 말고 반드시 들어가 봅니다.
- 미사에 참여하거나 십자가의 길 산책로를 걸으며 마무리합니다.
공세리 성당 성체조배실 후기

공세리 성당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고딕 양식(Gothic Style)의 본당 건물입니다. 고딕 양식이란 중세 유럽에서 발달한 건축 양식으로, 뾰족한 첨탑과 아치형 창문이 특징입니다. 1922년에 완공된 이 성당은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도 여러 차례 등장했고, 처음 보는 순간 왜 촬영지로 사랑받는지 즉각 이해가 됐습니다. 붉은 벽돌과 한국의 초록 자연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본당보다 더 깊이 기억에 남는 공간이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야외 성체조배실(聖體朝拜室)입니다. 성체조배실이란 성당에서 성체가 모셔진 공간 앞에 나아가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장소를 뜻합니다. 공세리 성당의 성체조배실은 동굴처럼 생긴 야외 구조물 안에 자리 잡고 있어서, 처음 가는 분들은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저도 사실 안내판을 보고서야 찾아 들어갔습니다.
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세상이 차단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밖에서 들리던 새소리도, 바람도, 다른 방문객의 발소리도 갑자기 멀어졌습니다.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는 동안, 이 고요함이 이렇게 구체적인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아이들은 워터파크에서 신나게 놀고, 저는 이 동굴 같은 공간에서 혼자 시간을 보낸 것이 이번 아산 여행에서 제가 가져온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길(Via Crucis)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Via Crucis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걷는 수난의 과정을 14개의 지점으로 나눠 묵상하는 신심 행위입니다. 공세리 성당의 십자가의 길은 무성한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는 오솔길을 따라 이어져 있어 한여름에도 시원하고 조용합니다. 걸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이었습니다.
결국 공세리 성당은 '예쁜 성당'이라는 소문만으로 가기에는 아까운 곳입니다. 드라마 촬영지로서의 외관에 가려져 있지만, 이곳은 200년 전 이 땅에 피를 흘린 이들의 이야기가 지층처럼 쌓인 순교성지입니다. 성체조배실처럼 작고 잘 안 보이는 공간이 오히려 가장 깊은 위로를 주기도 합니다. 아산에 들를 일이 생기신다면, 워터파크 일정에 딱 반나절만 더하세요. 아이들은 아빠와 워터파크 가고 저 혼자 오롯이 공세리성당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습니다.